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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9797 님의 블로그

[아침 긍정 확언 ] 남의 언어가 아닌, 나의 철학으로 사는 연습 본문

아침루틴

[아침 긍정 확언 ] 남의 언어가 아닌, 나의 철학으로 사는 연습

토마토신숙 2025. 5. 19. 09:18

오늘 아침 고명환 님의 유튜브를 들었다.
1266일째 아침 긍정확언, 그 중심에는 이런 말씀이 있었다.

“우리가 끌려 다니며 사는 이유는, 남의 생각과 남의 기준이 편해서입니다.”

그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편해서 그렇다.’ 이 단순한 한마디가 날카롭게 마음에 들어왔다.

사실 그렇다.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체계화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어렵고 고단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타인의 프레임에 기대 살아간다.

하지만 고명환 님은 조용한 방에 홀로 앉아 스스로에게 질문하라고 했다.
나는 왜 일을 하는가?
나는 왜 돈을 버는가?
나는 왜 태어났는가?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흩어진 지식들이 하나의 철학이 되어 내 안에 쌓이기 시작한다.
그 철학은 결국, 남이 만든 기준이 아닌 **'나만의 기준'**이 된다.


이어서 하와이대저택 님의 콘텐츠도 인상 깊었다.
오늘은 《마흔에 읽는 비트겐슈타인》(임재성 저) 이 책을 읽고
그 안의 문장을 인용하며, 자신의 철학적 해석을 덧붙여 설명해 주셨다.

그 중 하나가 인상 깊다.
“쓰는 말만 바꿔도 인생이 180도 달라진다.”

말이 곧 생각이고, 생각이 곧 현실이다.
내가 어떤 말을 쓰느냐에 따라 내 삶의 질서가 바뀐다.
결국 그 말들은 내가 어떤 세계를 살아가는지를 결정짓는다.


하와이대저택 님이 소개한 책 속 핵심 문장도 강렬했다.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 비트겐슈타인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사고의 틀이라 보았다.
내가 쓰는 언어는 내 생각의 구조를 만들고, 그 구조는 내 현실을 설계한다.
그런데 그 언어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남에게 물려받은 것이라면,
내 삶 역시 남이 설계한 구조물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진짜 철학은 타인이 만든 언어의 껍질을 찢고 나와,
그 너머의 ‘진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비트겐슈타인은 또한 경고한다.

“타인의 시선을 빌려 질문하지 말고, 자신의 마음에 물어라.”
“사물로부터의 자유보다 더 어려운 것은 사람으로부터의 자유다.”

삶은 단 한 번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살아간다.
아니,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혹은, 알고 있어도 다시 찾을 용기를 내지 못한 채
그저 오늘 하루도 버텨내는 데 급급하다.

하지만 세상이 무너져도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 삶은 아직 무너지지 않은 것이다.


삶은 파도와 같다.
예측할 수 없는 흐름 속에서,
우리는 때론 뜻밖의 성공을 만나고,
때론 온 힘을 다했음에도 냉혹한 실패 앞에 주저앉는다.

그럴 때일수록 필요한 건,
익숙한 말, 익숙한 생각, 익숙한 구조를 의심해보는 용기다.

진짜 사유는 사실 두렵다.
왜냐하면 익숙함을 내려놓고, 안전한 논리 구조를 의심하며,
스스로 쌓아온 기준을 다시 허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트겐슈타인은 말한다.
“변화는 언제나 조용한 의심에서 시작된다.”


이 아침, 나는 내 안에서 작은 속삭임 하나를 듣는다.

나는, 지금, 다시 시작한다.


🔖 숙이의 생각
타인의 말에 이끌려가는 삶은 편하지만 공허하고,
나의 철학으로 사는 삶은 어렵지만 단단하다.

오늘 하루, 나의 말과 나의 기준을 조금씩 세워가는 시간으로 만들어보자.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함께.